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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9·11 기념 열차테러 모의했다

<속보> 알카에다가 오는 9월 11일 9·11 10주년을 기념해 미국에서 또 한차례 테러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ABC방송이 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발견된 자료에서 2010년 2월까지 열차를 목표로 하는 테러 계획이 추진됐던 사실이 발견됐다. 이 자료에는 기차를 탈선시켜 계곡이나 다리 위에서 떨어뜨리는 방식의 테러 계획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 이후 구체적인 계획의 추진과 관련된 자료가 없어 실제로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계획에 또다시 뉴욕을 겨냥했던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당시 빈 라덴 뿐 아니라 현장에서 사망한 5명 가운데 4명이 비무장상태였다는 진술이 나와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빈 라덴과 함께 사살된 남자 3명의 사진이 로이터통신에 의해 공개됐으나 무기는 발견되지 않아 국제법 위반 논란과 함께 이슬람권의 분노, 이에 따른 보복테러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익명의 미국 고위 당국자도 5일 이 사실을 확인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 당국자는 “작전 당시 총기를 갖고 있던 1명은 초기에 일찌감치 사살됐으며, 이후에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고 말했다. NBC방송도 숨진 5명 가운데 4명은 무장하고 있지 않았으며, 작전시간은 대부분 컴퓨터, 휴대전화 등을 획득하는 데 소요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앞서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 3일 정례브리핑에서 "은신처에는 여러 명이 무장을 하고 있었고 총격전도 있었다"면서 "강한 저항을 예상했고 실제로 그런 저항이 있었다"고 밝힌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작전이 이뤄진 대부분의 시간에 총격전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폭스뉴스는 5일 빈 라덴이 비록 비무장 상태였지만 AK-47 소총과 러시아제 반자동 권총인 마카로프 등 2종의 무기가 가까운 문 인근에 세워져 있었다고 전했다. 박기수 기자 kspark206@koreadaily.com

2011-05-05

1인자 빈 라덴 죽음 뒤엔 2인자 배신 있었다

작전팀은 네이비실 최정예 '팀6' 소말리아 해적 소탕도 원샷 원킬 미국이 2일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인 '제로니모 E-KIA'를 성공한 것은 사실상 알카에다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60.사진)의 배신 행위에 힘입은 것일 수 있다고 AFP통신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일간지 '알와탄'을 인용해 5일 보도했다. 알와탄은 알카에다 내부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빈 라덴과 이집트 출신인 알자와히리를 중심으로 한 파벌 간에 권력 다툼이 심화됐고 이 과정에서 빈 라덴의 소재지 등 정보가 미 중앙정보국(CIA)에 누출됐을 수 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이 빈 라덴의 은신처를 알아내는 데 단서가 된 빈 라덴의 연락책 셰이크 아부 아메드가 실제로는 알자와히리의 심복이었으며 국적도 쿠웨이트가 아닌 파키스탄이었다. 알자와히리를 구심점으로 한 '이집트 파벌'은 2004년부터 조직 전체 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해 왔으며 최근 들어 사실상 알카에다를 이끌어 왔다. 신문은 이집트 파벌이 권력에서 멀어진 채 '상징적 리더'로 남은 빈 라덴에게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머물도록 강요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뉴욕 타임스(NYT)는 빈 라덴의 저택에 침투해 작전을 벌였던 미국 요원들은 네이비실의 최강팀인 '팀 식스(Team 6)'라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팀은 네이비실 내에서 은밀한 존재와 강력한 전투력으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 또는 '올스타'로 불린다. 팀 식스의 공식 명칭은 해군특수전개발그룹(Naval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DevGru)이다. 이들이 2009년 소말리아 해적이 미국 화물선 머스크 앨라배마호를 납치한 뒤 인질극을 벌이는 현장에 투입돼 총알 세 방으로 세 명의 해적을 처치하는 '원 샷 원 킬(One Shot One Kill)'의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던 바로 그 팀이라고 NYT가 보도했다. 팀 식스의 작전이 워낙 은밀하게 이뤄져 백악관이나 미 국방부도 이들의 존재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NYT는 전했다. NYT에 따르면 3000명 정도로 구성된 네이비실은 팀1부터 팀10으로 나뉜다. 팀 식스 요원은 30대 중반이 많다. 어려운 작전을 통해 검증된 요원들만 들어오는 데다 순간적인 판단이 중요한 특수작전이 많아 경험 있는 사람들만 뽑기 때문이다.

2011-05-05

그라운드 제로 방문한 오바마 '침묵의 추모', "미국 단합심 기억…어떤 말도 필요없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5일 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해 헌화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에 항공기 테러를 지시해 근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 은신처에서 사살된지 나흘만이다. 붉은색 흰색 푸른색 꽃들로 꾸며진 한다발의 꽃을 헌화한 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의 '침묵의 추모'에 대해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생명을 구해냈던 경찰관과 소방대원 등 인명구조대원들을 추모하고 끔찍한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하나가 됐던 미국의 단합심을 기억하는 자리에서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희생자 가족들을 이용하는 것 처럼 보이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한 백악관의 결정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헌화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9.11 테러때 15명이 숨진 미드타운의 엔진 54 소방서를 방문해 소방관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 곳은 10년전 그 끔찍했던 날에 비범한 희생을 보여준 상징적 장소"라면서 "진심으로 여러분의 희생에 감사를 표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빈 라덴의 사살에 대해 "`우리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빈 말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파키스탄 빈 라덴의 은거지를 습격한 미군 장병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희생 때문이었다"며 "그들은 목숨을 앗긴 여러분의 형제들의 이름으로 그 작전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9.11 테러 당시 뉴욕시장을 지낸 루돌프 줄리아니와 함께 맨해튼 제1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그 비극을 결코 잊은 적이 없으며 뉴욕경찰과 긴급구조대원 소방대원들이 보여준 용기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빈 라덴 사살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하겠다고 말했던 것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찰스 슈머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줄리아니 전 시장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등 이 지역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러나 재임시 9.11 테러를 겪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초청을 받았지만 불참했다. 그는 대변인을 통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9.11 발생 수일 후 붕괴된 빌딩 잔해 속에서 소방관들이 사용하던 확성기를 통해 연설하기도 했으며 그의 재임 내내 이 곳은 상징적 장소로 통했었다.

2011-05-05

힐러리, 입을 손으로 가린 이유는…"앨러지로 기침 막기 위해서" 해명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5일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급습 당시 상황실을 찍은 사진에 대해 "촬영될 당시에 어떤 장면을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리비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연합국 외무장관 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 중인 힐러리 장관은 이날 현지 기자회견에서 "당시 급습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된 38분이었다"면서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특히 당시 백악관 사진 담당 최고책임자인 피트 수자가 찍은 사진에서 자신이 입을 손으로 가린 것에 대해서도 "앨러지로 고생하고 있는데 아마 기침이나 재채기를 막기 위해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안보사령탑이 한자리에 모여 긴장된 모습으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장면을 찍은 이 사진은 큰 화제가 됐으며 특히 클린턴 장관의 놀란 듯한 모습을 놓고 일부에서는 `끔찍한 사살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입을 가렸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클린턴 장관 본인이 "기침을 막으려 했던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이런 추측은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 됐다. 앞서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 사진과 관련 "당시 상황실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안보팀은 작전상황에 대해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았다"면서 "사진도 작전 화면을 보던 중에 찍힌 것"이라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이와 관련 AP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이 사살되는 장면을 보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2011-05-05

[J-Topic] 빈 라덴 '최후의 여인' 알 사다, 18살 때 5천달러 받고 정략결혼

1일 새벽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거처를 급습한 미국 네이비실 대원들은 빈 라덴 경호원들을 하나 둘 제압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방문을 열자 방 안에 빈 라덴과 젊은 여성이 함께 있었다. 이 여성은 빈 라덴을 보호하기 위해 건장한 네이비실 대원들에게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고 잠시 뒤 빈 라덴이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여성은 한때 빈 라덴의 인간방패 경호원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빈 라덴의 다섯째 부인 아말 알 사다(Amal al Sadah.29.사진)라고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 등이 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예멘 출신의 아말 알 사다는 9.11 테러 1년 전인 200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18세의 나이에 빈 라덴과 결혼했다. 빈 라덴은 자신의 뿌리(부친의 고향)인 예멘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예멘에서 새 신붓감을 찾았다. 알카에다 간부가 소개한 아말 알 사다는 당시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에 심취한 10대 소녀였다. 빈 라덴이 태어나고 자란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은 모두 같은 아랍어를 쓰기 때문에 말도 통했다. 다섯째 부인이었으나 이미 결혼한 네 명의 부인 가운데 한 명과는 이미 이혼한 상태여서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 있다'는 이슬람 율법에 저촉되진 않았다. 예멘의 공무원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아버지는 아랍 풍습에 맞춰 사위로부터 현금(5000달러)을 받고 딸을 시집보내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현목.이에스더 기자

2011-05-05

탈레반, 알카에다와 결별하나…빈 라덴 사살에 미국 비난 안해

전 세계가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으로 요란하지만 그가 설립한 알 카에다의 동지로 그를 보호했던 탈레반은 침묵을 지키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빈 라덴 사살 발표 이후 탈레반 지도부는 회의를 위해 파키스탄의 은신처로 사령관들을 소집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 보도했다. 탈레반은 이틀간의 비정상적인 침묵 이후 지난 3일 그의 사망을 입증할 수 있는 신뢰할 만 한 증거가 없다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을 뿐이다. 성명에 빈 라덴에 대한 찬양과 미국에 대한 비난이 없었던 점이 눈에 띄었다. 이와 관련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으로 탈레반 내부에서 알카에다와의 관계 청산 관련 논의가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양 테러단체들의 협력 관계는 빈 라덴과 아프간 탈레반의 은둔형 지도자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 사이의 오랜 친분에서 비롯됐다. 그동안 알카에다는 아프간 탈레반에 폭발물을 다루는데 필요한 전문 기술을 전수해주고 아프간산 아편의 밀반출을 도왔다. 그 대가로 탈레반은 알카에다 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몰래 입국하도록 돕는 등 상호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알카에다와 아프간 탈레반은 애당초 조직의 목적이나 지향점 등의 면에서 서로 많이 달랐다. 알카에다는 서방을 겨냥한 전세계적인 지하드(성전)를 수행하고 무슬림 세계에서 종교적 초강대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아프간 탈레반의 활동은 아프간 외부의 목표물에 대한 공격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아프간 탈레반과 알카에다 사이의 문화적 차이도 갈등의 불씨가 돼왔다. 알카에다는 탈레반을 '웨스트버지니아주 촌사람들처럼 세련되지도 유식하지도 않은' 후진적인 단체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탈레반 고위 지도부 일각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로 아랍계로 이뤄진 알카에다의 거만함에 불만을 품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아프간 정부의 평화협상 제안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게 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신복례 기자

2011-05-04

네이비실 '위험수당' 연 9만달러, 특수전 인력 6만1500명…9·11 이후 예산 4배 늘어

'미국의 공적 1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것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항공모함이나 스텔스 폭격기가 아니었다.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요원이 쏜 총알 한 방이었다. 최근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이슬람 테러 단체를 상대로 비정규전 위주로 전쟁을 치르면서 특수부대와 무인항공기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미 일간지들이 보도했다. USA투데이는 3일 미 특수부대원들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반군 지도자들을 찾아내고 체포하는 작전을 매일 수행 중이며 네이비실은 빈 라덴 사살 작전 같은 시가전을 담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네이비실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인원은 227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네이비실 훈련은 영화 'GI 제인'에서 그려진 대로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혹독한 훈련을 마친 뒤 실전에서 위험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네이비실에게는 적지 않은 보상이 주어진다. 1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네이비실은 연봉 외에 보너스로만 한 해 9만 달러까지 받는다. 20년차 이상이 되면 연간 상여금이 15만 달러까지 치솟는다. 보수 신문인 워싱턴 타임스는 2일 2001년 9.11 테러 이후 특수부대 관련 예산이 10년 만에 100억 달러로 4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특수전 인력도 4만5500명에서 6만1500명으로 35% 늘었다. 하원 군사위원장을 지낸 덩컨 헌터(공화당) 의원은 "의회는 관련 예산을 눈에 띄게 증액했고 덕분에 특수부대는 스스로 작전 계획을 세우고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4일 무인항공기가 테러 척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인항공기는 테러 조직의 동태를 감시할 뿐만 아니라 아군의 희생을 걱정할 필요 없이 공격에 나설 수 있다.

2011-05-04

"빈 라덴 생포된 뒤 부인·딸 앞에서 사살됐다"…영국 텔레그래프, 파키스탄 군 정보국 인용 보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이 진실 공방과 법적 정당성 논쟁에 휩싸였다. 아랍권 위성 보도채널 알-아라비야는 4일 파키스탄 정보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생포됐다가 가족 앞에서 사살됐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일 미군의 작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빈 라덴 딸(12)의 진술에 따르면 미군은 1층에 있던 빈 라덴을 사로잡은 뒤 가족들 앞에서 사살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 딸이 빈 라덴과 다섯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피아라고 전했다. 사피아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는 빈 라덴의 저항 때문에 사살했다는 미국 정부의 설명과 배치되는 것으로 비무장 상태의 상대방을 사살한데 따른 정당성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도 당초 빈 라덴이 최후 순간까지 총격전에 참여하며 저항하다 사살됐다고 밝혔다가 3일에는 빈 라덴이 무기를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사살됐다고 정정한 바 있다. 빈 라덴이 비무장 상태였다고 밝힘에 따라 사살이 정당한 법 집행이었느냐는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는 이날 현지 TV에 출연해 "미군의 작전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빈 라덴 사살이 아랍세계에 엄청난 결과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미군의 작전 종료 후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시신 4구를 수습하고 여성 2명과 2~12세 어린이 6명을 연행했다고 알-아라비야는 전했다. 현지 일부 매체는 파키스탄 당국이 모두 16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관리는 이들 대부분이 빈 라덴의 가족으로 현재 이슬라마바드 인근 라발핀디의 군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연행된 여성 2명 가운데 한 명은 빈 라덴의 부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파키스탄 관리들은 미군이 작전 종료 후 이들의 신병 확보를 포기한 것은 작전에 동원된 헬기 4대 중 1대가 추락해 수용능력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파키스탄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미군은 이미 빈 라덴과 아들의 시신을 헬기에 싣고 이륙한 뒤였다고 파키스탄 관리들은 전했다. 또한 다른 한 관리는 "은신처에는 벙커나 도피용 터널이 전혀 없었다"며 "세계 최고의 수배 인물이 이런 곳에 살았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정도"라고 말했다. ▶미 "비상연락망 메모 발견"=ABC방송은 빈 라덴의 저택에서 컴퓨터 5대 하드 드라이브 10개 저장 장치 100개 서류 수천 장을 확보했다고 4일 미 관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미 당국은 이 자료들을 분석해 알카에다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행방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빈 라덴이 탈출 상황에 대비해 옷 속에 500유로 지폐들을 넣고 바느질로 숨겼으며 비상연락 전화번호 2개를 적은 메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011-05-04

오바마 "빈 라덴 사진 공개 않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일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녹화한 CBS방송 ‘60분’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빈 라덴을 사살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안면 인식(facial recognition)’ 조사와 DNA테스트 결과를 언급하면서 “알-카에다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빈 라덴이 죽었다는 사실에 의심은 없다”면서 사진 공개로 이런 사실에 변화가 있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그는 “머리에 총격을 받은 누군가의 생생한 사진이 추가적인 폭력을 선동하거나 선전의 수단으로 떠돌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 사진을 (승리의) 트로피들로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 사진들의 생생함을 감안한다면, 사진 공개는 국가안보에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및 정보당국자들과의 협의 끝에 이번 결정이 이뤄졌다면서 “그들 모두도 동의했다”고 전했다. 한편 테러 조직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특수부대 요원들에게 생포됐다가 이후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당했다고 러시아 인터넷 뉴스통신 RBK가 4일 파키스탄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통신은 미군이 빈 라덴을 사살할 당시 현장에 있었던 그의 딸이 파키스탄 정보 당국의 심문에서 미국 특수부대 요원들의 작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빈 라덴은 숨어지내던 파키스탄의 저택에서 무장하지 않은 채 미군에 붙잡혔으며 그 뒤 저택 안에 있던 친척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총살됐다.

201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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